현 프랑스를 대표하는 강렬한
개성의 엔터테이너, -M-

(마티유 셰디드, Matthieu Chedid)
마티유 셰디드, 혹은 -M-이라 불리는 이 사나이는 우리에겐 낯선 이름일지 모르지만 프랑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그리고 유럽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슈퍼스타다. 최대 2만 명 이상을 수용하는 파리 베르시의 아코르호텔 아레나에서 펼쳐진 3회 공연을 모두 매진시켰으며, 2012년도 투어는 150회의 퍼포먼스로 총 130만 명을 동원해냈다. 특히 프랑스에서의 실황을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노래에 맞춰 떼창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En Tete a Tete'에서는 가사를 따라 부르는 것뿐만 아니라 특정 부분에 모두 고개를 움직이는 모습 같은 것을 엿볼 수 있다. 일단은 노래나 불어를 모르더라도 충분히 신나게 공연을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
이번에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펼쳐질 현대카드 Curated 20 -M- <The Extraordinary Live Show> 내한공연은 힙합의 전설 델 라 소울(De La Soul)과 프랑스를 대표하는 밴드 피닉스(Phoenix)에서 활동해온 드럼 연주자 로랭 클레(Lawrence Clais), 그리고 샘플러가 붙어있는 독특한 기타와 베이스를 연주하는 브래트 토마스 아클레(Brad Thomas Ackley)의 멤버로 구성된 강력한 트리오 편성으로 진행된다. 활기찬 소규모 밴드 구성이지만 공연의 내용 면에서는 월등히 높은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M-은 자신의 밴드를 '파워 트리오'라 칭한다. 이들과 함께하는 -M-의 라이브를 접하는 그 즉시 우리는 마법에 걸리게 될지도 모른다.

재능과 독창성으로 무장한
프랑스가 자랑하는 4차원 로맨티스트

마티유 셰디드를 말할 때, 우선적으로 언급되는 것이 바로 그의 키치적인 외모이다. 과장된 선글라스는 과거 샹송가수 미셸 폴나레프(Michel Polnareff)가 연상되고, 삐쭉 솟은 머리에 빛나는 슈트를 입고 기타연주에 집중할 때는 호테이 토모야스(布袋寅泰)같기도 하다. 어찌 보면 레니 크라비츠(Lenny Kravitz)와 영화 캐릭터 오스틴 파워를 반씩 섞어 놓은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마티유 셰디드를 그저 그런 괴짜로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외모는 물론 노래 제목과 가사에 유머와 말장난이 가득하긴 하나 실은 진지한 음악가다. 프랑스의 그래미라 불리는 '음악의 승리상(Victoire de la Musique)'을 총 9차례나 수상하는 등 그의 음악은 꽤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진다. 2003년도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 된 애니메이션 [벨빌의 세 쌍둥이(The Triplets of Belleville)]의 주제곡 'Belleville Rendez-vous'을 부르기도 했던 마티유 셰디드는 프렌치 팝과 록 등 장르에 얽매이지 않은 채 다양하면서도 유일한 고유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데에 주력했다. 외모가 어찌됐건 간에 그는 현 프랑스를 상징하는 독보적인 록 싱어이자 프로듀서, 그리고 기타리스트이다.

괴짜 슈퍼히어로 -M-으로 거듭나다

예술가 집안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여러 밴드 활동을 경험한 마티유 셰디드는 서서히 '-M-'의 세계관을 구축해간다. 그리고 자신의 첫 번째 솔로앨범을 낼 무렵 '-M-'이라는 스테이지 네임을 취한다. 범상치 않은 M자 형 헤어 스타일에 화려한 슈트를 착용한 장난기 다분한 슈퍼히어로로 설정된 -M-은 설명에 의하면 의외로 자신의 수줍음을 극복해내기 위한 캐릭터라고 한다. 그러나 세 보이는 -M-의 캐릭터와는 다르게 그와 인터뷰를 진행했던 이들은 그가 실제로 매우 온화하고 상냥한 사람이라며 입을 모은다.

1998년, 데뷔 앨범 [Le baptême]을 발표했을 시기에는 주로 혼자 공연했고 가끔씩 첼로 연주자와 함께했다. 느긋한 노래들이 많은 앨범은 보사 노바나 포크 팬들에게도 어필할 만 했다. 그리고 1년 후 발표한 [Je dis aime]가 50만 장 이상을 판매하는 히트를 기록하면서 -M-이라는 이름이 비로소 주목 받는다. 빈티지한 70년대 풍 사운드 텍스처로 이뤄진 이 앨범을 통해 그는 '프랑스 버전의 레니 크라비츠'라는 평가를 얻게 된다. 유쾌한 창법의 글램 록 스타일의 곡들을 필두로 다양한 색깔을 담아냈는데,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지기 스타더스트 시기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출처: Youtube
2003년도에는 연주 곡 모음집 [Labo M], 그리고 [Qui de nous deux]을 발표한다. [Qui de nous deux]의 경우 딸의 탄생이 영향을 줬는지 조금 더 부드러운 앨범이 됐다. 나른하고 달콤한 목소리가 서서히 듣는 이들에게 잠식해낸 앨범으로 이 시기에는 분홍색 의상에 분홍색 클래식 기타를 연주했다. 앨범의 커버, 그리고 동명의 타이틀곡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이 분홍색 기타는 그의 딸이 태어난 것을 축하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Qui de nous deux]는 프랑스 롤링 스톤(Rolling Stone) 매거진에서 '가장 위대한 프렌치 록 앨범 100' 중 97위에 꼽히기도 했다.
출처: Youtube
다양한 라이브와 프로젝트, 그리고 피쳐링 작업으로 인해 다음 앨범이 나오는 데에는 6년의 시간이 걸렸다. 2009년 작 [Mister Mystère] 역시 거친 록 성향의 곡들을 중심으로 신비하면서도 개성적인 세계관을 유지해낸다. 2011년 작 [Îl]에 수록된 'MOJO'의 경우 마치 OK GO 같이 멤버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다양한 장소를 순간 이동하는 듯한 귀여운 비디오로 완수해냈다. 점점 진행되어가면 갈수록 규모가 커지는 구성마저 OK GO의 비디오와 흡사하다. 비디오에 나오는 몇몇 안무를 미리 익혀간다면 언더스테이지에서 더욱 흥미진진하게 공연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M-이 발표한 앨범들은 제각기 전혀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는데, 혼자서 이렇게나 다양한 세계관을 보여주는 작가는 정말로 드물지 않나 싶다.

헤어 스타일만큼이나 흥미진진한
-M-의 뮤직 비디오

앞서 잠시 언급했던 'MOJO'도 그렇듯 -M-의 비디오들 또한 여러모로 흥미롭다. 엑스레이로 촬영한 것 같이 모든 것이 투시된 채 전개되는 'Est-Ce Que C'Est Ca?', [매드 맥스(Mad Max)] 풍의 사막에서의 혈투를 다뤄낸 'Baïa' 등 장소나 소재 따위를 초월해내곤 한다. 눈밭을 배경으로 정교한 스톱모션 방식으로 제작된 ‘La bonne étoile’, 투박한 인형들을 손으로 조종해내는 'Le Roi Des Ombres', 그리고 남녀의 크기를 달리 표현해낸 'A Tes Souhaits' 같은 비디오들은 마치 아기자기한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해내기도 한다.
출처: Youtube
그 밖에도 인상적인 비디오들은 많다. 따분한 식탁 위에 요정이 등장하는 'Onde Sensuelle', 노숙하는 -M-의 훵키한 백일몽을 담은 'Machistador' 같은 비디오들에서도 -M- 특유의 동화적인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평범한 '마티유 셰디드'일 때의 모습과 화려한 -M-으로 활동할 때의 모습들을 대비시켜내는 'Amssétou'의 비디오 또한 오직 그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인간은 모순되는 상반된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것에 쉽게 끌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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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을 탐낸 뮤지션들

뛰어난 -M-의 재능을 주변 뮤지션들이 가만히 내버려둘 리 없다. 명실공히 프랑스를 대표하는 톱 아티스트들이 그를 필요로 했다. 일단 조니 뎁(Johnny Depp)의 연인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가수 바네사 빠라디(Vanessa Paradis)와는 2000년 작 [Bliss], 그리고 2007년도 앨범 [Divinidylle]에서도 조력자로써 다양한 곡들을 공동 작업해냈다. 심지어 2011년도에 제작된 낭만적인 애니메이션 [파리의 몬스터(Un monstre à Paris)]에서는 -M-과 바네사 빠라디가 함께 목소리 출연을 하면서 주제곡마저 소화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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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했던 제인 버킨(Jane Birkin)의 앨범 [À la légère]에서는 기타를 연주하기도 했고, 매회 급진적인 모습을 보여온 전위파 노장 브리짓 퐁텐느(Brigitte Fontaine)의 앨범작업에도 투입되어 그 독특한 세계를 무리 없이 커버해냈다.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자니 알리데이(Johnny Hallyday)의 2011년도 컴백 작 [Jamais Seul]의 공동 프로듀서로 지목되어 함께 완수해내기까지 한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샹송 가수의 작업부터 가장 먼발치에 떨어져있는 기괴한 아티스트와의 작업마저 완수해낸 그는 전천후 뮤지션으로서 자신의 능력 치를 증명해냈다.

심지어 프랑스를 넘어서는 활약을 보여나갔다. 존 레논(John Lennon)의 아들 션 레논(Sean Lennon)이 자신의 곡 'Parachute'를 불어로 번안한 'L'eclipse'에서 그와 함께하면서 뮤직비디오 또한 제작했고, 국내 페스티벌을 통해 내한하기도 했던 말리 출신 맹인 부부 듀오 아마두 앤 마리암(Amadou & Mariam)의 걸작 [Welcome to Mali]에 수록된 ' Masitéladi '에도 피쳐링 작업을 하며 광범위한 활동을 전개한다. 공동작업은 아니지만 영화 [난 그녀와 키스했다(Toute première fois)]에서는 케이티 페리(Katy Perry)의 ‘I Kissed a Girl’을 불어로 커버하기도 했다. 심지어 최근에는 중국 뮤지션 AM444과도 함께 작업했는데 과연 그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궁금하다.

현재 가장 뜨거운 프랑스 뮤지션을
피부로 체험할 절호의 기회

출처: Youtube
프린스(Prince)의 훵키함과 지미 헨드릭스의 파괴력을 방불케 하는 연주, 그리고 재기로 흘러 넘치는 –M-의 노래는 매회 관객들을 압도해냈다. 몇몇 실황을 확인해보면 알 수 있겠지만 쇼 그 자체로서도 높은 완성도를 지닌 공연들을 해왔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재치 있는 생기로 가득한 연주가 펼쳐지는 와중 환상적인 순간들이 계속된다. 이번에 펼쳐지는 내한공연에서 -M-이 우리를 얼마나 놀라게 만들지 자못 기대된다. 처음엔 낯설지만 보다 보면 빠져버리게 되는 프랑스 걸작 애니메이션 [판타스틱 플래닛(La Planète Sauvage)]을 볼 때의 기분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코믹하면서도 사려 깊은 공상의 세계에 프랑스 특유의 낭만과 정교함이 더해진 형태로 -M-의 음악을 축약해낼 수 있을 것이다. 정체 모를 낯선 사람이라는 그에 대한 첫 인상은 마술에 걸린 것 같은 기묘한 에너지로 가득한 퍼포먼스를 접한 직후 일순간 무한한 애정으로 변해있을 지도 모른다.
Writer. 한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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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튼 존(Elton John)의 이번 내한 공연 이전에 진행된 일본 요코하마 아레나의 규모는 약 1만 7천 석, 그리고 뉴질랜드의 웨스트팩 스타디움의 경우 약 3만 6천 석을 각각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알려진 대로 이번 내한공연은 단 500명의 관객만을 수용하는 공간인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진행됐다. 그러니까 3만 단위의 뉴질랜드까지 가지 않더라도 1만 단위의 요코하마 아레나 수용 관객의 약 34분의 1 규모가 되는 셈이다. 심지어 다른 투어 멤버 없이 엘튼 존 혼자 피아노 한대만 놓고 진행됐던 2007년 일본 무도관 공연에서도 약 1만 명 가량이 모였다. 앞의 사례들을 종합해 봤을 때 이번 내한공연의 성사는 미스터리에 가깝다. 때문에 공연을 보기 이전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정작 공연장에 도착해 직접 눈으로 무대를 확인했음에도 마찬가지로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비가 내리는 와중 진행된 2004년 잠실 주경기장에서의 최초 내한 당시 엘튼 존은 다음 번 내한 때는 관객들이 젖지 않도록 실내에서 공연하겠다 말했고, 이후 2012년 내한 때는 실제로 천장이 막혀있는 올림픽 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진행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실내 공연장에서 성사됐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실내 공연장이 아닌, 여러모로 더욱 특별한 공간이었다. 공연장에는 한 시간 전부터 중년의 팬들은 물론 젊은 층들, 심지어는 청소년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런 거장의 무대와 악기들이 이렇게나 근접한 곳에 셋팅되어 있는 것이 신기했는지 많은 이들이 공연 시작 이전부터 무대 사진을 촬영했다.

  




엘튼 존의 땀 방울까지 확인할 수 있었던, 사상 초유의 퍼포먼스


공연 시간이 되자마자 밴드 멤버들이 먼저 무대 위에 올랐다. 만 40년 이상을 함께 해온 드러머 나이젤 올슨과 기타리스트 데이비 존스톤이 바로 눈 앞에 있었다. 나이젤 올슨의 손 그림과 이름이 새겨진 두 대의 드럼 워크샵 킥 드럼이 선명하게 보였다. 주로 깁슨 레스 폴을 사용하는 데이비 존스톤의 경우 항상 사진으로만 봐왔던 깁슨의 리버스 플라잉 브이를 매고 무대 위로 등장했다.


2004년 첫 내한, 그리고 지난 2012년도 내한 당시에도 첫 곡이었던 'The Bitch Is Back'으로 세 번째 내한 공연이 시작됐다. 최근 공연들에서 주로 'Funeral For A Friend'를 인트로로 연주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출발이다. 간주가 시작되고 얼마 후, 드디어 엘튼 존이 등장했다. 무대 위로 올라오자 마자 손으로 리듬을 탔는데, 필자의 경우 공연장 뒤편에서 봤음에도 마치 잠실 주경기장의 맨 앞자리 수준의 거리 정도로 느껴졌다. 심지어는 엘튼 존의 찰랑거리는 십자가 귀걸이까지 보일 정도였는데 도대체 맨 앞자리에서 본 이들은 어땠을까 싶다. 





1973년, 무려 8주 연속 전미 차트 정상을 휩쓸었던 명반 [Goodbye Yellow Brick Road]의 대표 곡 'Bennie And The Jets'가 이어졌다. 붉은 조명 아래 특유의 절도 넘치는 리듬라인은 라이브에서 더욱 생생했고 엘튼 존은 간혹 일어선 채 연주하면서 사람들에게 떼창을 유도했다. 97년 버전이 아닌 73년도 버전의 'Candle in the Wind'가 이어졌다. 이 두 곡의 피아노 인트로가 귀에 들어오는 그 순간부터 이미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Goodbye Yellow Brick Road] 앨범에서 두 곡을 했고 이제는 [Madman Across the Water] 앨범에서 두 곡을 하겠다 말하면서 'Levon', 그리고 영화 [올모스트 훼이모스]의 클라이막스에서 등장인물들이 다같이 투어버스에서 불렀던 명곡 'Tiny Dancer' 같은 발라드 곡들을 이어냈다. 'Levon'의 경우 화려한 오케스트라를 신시사이저 연주자 킴 불러드가 재연해냈다. 참고로 그는 80년대 밴드 포코의 멤버로, 국내에서는 이승환의 5집 앨범 [Cycle]의 프로듀서로도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퍼커션 주자 존 마혼이 심벌로 시작해 콩가, 탬버린으로 바쁘게 오가는 와중, 엘튼 존의 묘기 같은 트릴 연주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Madman Across the Water]의 커버를 연상케 하는 푸른 조명이 깔리고 'Tiny Dance'가 흘렀다(노래가사 또한 "Blue Jean Baby"로 시작한다). 이 뭉클한 노래가 펼쳐지는 광경을 이렇게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찼다. 곡이 진행되는 동안 데이비 존스톤은 더블 넥 기타를 연주했는데, 그는 튜닝 때문에 슬라이드 바로 연주하는 곡은 항상 더블넥 기타를 이용해오곤 했다.


1973년 작 [Don't Shoot Me I'm Only The Piano Player]에 수록된 발라드 'Daniel'에 이어 엘튼 존의 일곱 번째 넘버원 곡이자 '엘튼 존 밴드' 명의로 발표한 싱글 'Philadelphia Freedom'의 건강한 목소리와 피아노가 울려 퍼졌다. 특히 베이스 주자 맷 비조넷은 익살스럽게 베이스를 위로 들어 보이며 연주하기도 했다. 익숙한 'Goodbye Yellow Brick Road'의 피아노 전주가 시작되자마자 사람들은 환호했고 곧바로 노란 조명이 깔렸다. 사람들은 이 명곡의 허밍을 성심 성의껏 따라 불렀다. 이후 엘튼 존의 서정적인 즉흥 피아노 연주 이후 갑자기 'Rocket Man'의 인트로를 삽입시켜냈다. 자유롭게 연주하는 와중 다시금 흐름을 되찾는 이런 순발력은 과연 거장답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든다. 탄력 넘치는 목소리, 그리고 박력 있는 피아노 연주는 있는 그대로 마음 속으로 울려왔다.





1983년도 앨범 [Too Low For Zero]에 수록된 'I Guess That's Why They Call It The Blues'의 경우 엘튼 존이 저음을, 그리고 밴드가 고음의 코러스를 완수해냈다. 특히 고령의 드러머 나이젤 올슨이 드럼을 연주하며 열창하는 것은 매우 인상적인 풍경이었다. 앨범에서 스티비 원더가 녹음한 하모니카는 키보드 연주로 대신 재연해냈다. 1992년 작 [The One]의 감동적인 타이틀 트랙 'The One'은 엘튼 존이 알콜과 약물로 인해 요양시설에서 나온 직후 다시 출발하는 의미에서 발표한 노래로, 밴드의 도움 없이 혼자 핀 조명 아래서 이 곡을 부르는 모습은 인상적인 그림을 만들어냈다. 엘튼 존 특유의 믿음직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익숙한 피아노 인트로와 함께 엘튼 존 최고의 대표 곡 중 하나인 'Your Song'이 시작됐다. 혼자 노래를 부르는 와중 2절부터 밴드가 함께 했는데, 시간을 초월해내는 이 명곡이 흐르자 공연장에는 온화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1984년 작 [Breaking Hearts]의 경쾌한 'Sad Songs (Say So Much)'가 흐르자 사람들은 몸을 흔들며 감상하기도 했다. 퍼커션 주자 존 마혼은 공연장 천장에 위치한 쇠기둥을 스틱으로 치면서 컴팩트한 공간에 걸맞는 재치 있는 연주를 전개해내기도 했다. 멤버 소개 이후 조지 마이클과 함께 불러 더욱 유명해진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의 장중한 전주가 시작되자마자 사람들은 'Your Song' 때보다 더욱 크게 환호를 보냈다. 비장한 감동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와중 비로소 공연이 절정에 달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후에는 로큰롤 메들리가 펼쳐진다. 경쾌한 80년대 히트 곡 'I'm Still Standing'은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꽤나 상징적 의미가 있는 곡이었다. 목 수술을 하기도 했고 약물로 인한 재활치료를 받기도 했던 엘튼 존은 여전히 계속 노래하며 정상의 자리에 서있기 때문이다. 힘있는 손가락질과 함께 [Goodbye Yellow Brick Road] 앨범의 'Your Sister Can't Twist (But She Can Rock 'n Roll)'과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을 앨범 그대로 이어내면서 이 브레이크 없는 로큰롤 레퍼토리가 뜨겁게 장내를 달궈놓은 채 공연은 막을 내렸다. 특히 이런 빠른 템포의 트랙에서 엘튼 존의 피아노 솔로가 두드러졌는데 마치 피아노의 신이 강림이라도 한 듯 그의 손가락은 맹렬히 내달려나갔다. 


첫 내한에서는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을, 그리고 두 번째 내한에서는 'Circle of Life'를 마지막 곡으로 배치해내면서 두 번 모두 [라이온 킹] 사운드트랙의 곡으로 공연을 마무리 지어낸 바 있는데 이번에는 1972년도 히트곡 'Crocodile Rock'으로 공연을 끝맺었다. 노래 시작 전 관객들에게 노래하고 싶으냐 물었고, 결국 싱얼롱이 나오는 부분은 관객들의 대 합창으로 채워졌다. 곡이 진행되는 동안 내 앞에서 관람하던 외국인 노부부는 신나게 춤을 추기도 했다. 필자 또한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앵콜까지 끝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공연의 여운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자리를 뜨지 못한 관객들은 10여분 동안 앵콜을 외치고는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갔다. 



'인간 엘튼 존'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진귀한 현장


차원이 다른 감동이었다. 그러니까 이 정도 대 스타의 퍼포먼스를 이런 규모의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All The Hits Tour'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세대를 초월한 소중한 히트 곡들을 아낌없이 선보인 자리였고, 엘튼 존의 화려한 생애를 실감케 하는 무대였다. 특히나 엘튼 존 옆에서 40여 년을 함께해온 데이비 존스톤과 나이젤 올슨이라는 영광스런 역사의 주인공들이 자신들이 레코딩한 명곡을 백업, 혹은 재연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의 완성된 형태로 들려주면서 더욱 원음의 뉘앙스에 가까운 무대로서 완결될 수 있었다.


도무지 68세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무서운 에너지가 엘튼 존에게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목소리, 그리고 피아노 볼륨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연장에 연장을 거듭했던 라스 베가스 시저스 팰리스에서의 장기공연을 비롯, 보나루 페스티벌 등에 출연하면서 최근까지 정력적인 퍼포먼스를 해온 엘튼 존이었는데, 감히 '여전한 현역'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실례가 아닐까 생각될 만큼 생동감으로 가득 찬 라이브였다. 특히 그가 관객을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곰처럼 소리지르는 제스쳐는 이 사람이 70세를 바라보는 노인은 아닐 것이라는 기분마저 들게 했다. 이따금씩 최고의 미소를 날리며 관객들을 행복하게 만들기도 했다.





무대의 규모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과연 톱 클래스 아티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뮤지션들에 비해 멘트는 적은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무척 친밀하게 그를 느낄 수 있었다. 무대가 관객석과 지나치게 가깝다 보니 기타리스트 데이비 존스톤은 자신이 연주하던 기타 피크를 관객석으로 던지는 것이 아니라 직접 관객의 손에 쥐어주는 진풍경 마저 벌어졌다. 엘튼 존의 섬세한 피아노 연주는 더욱 가까이 들려왔고 때문에 이 소리들은 뭔가 필터 같은 것을 거치지 않은 채 순도 높게 우리 체내로 흡수되어 갔다.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가 아니면 결코 체험할 수 없는, 간만에 모두가 함께 이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충만했던 공연이었다. 과연 우리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런 특별한 경험을 몇 번이나 더 할 수 있을까.


뭔가 루즈하다거나 비어있다는 생각을 단 1초도 할 수 없는 꽉 찬 퍼포먼스였다. 그것은 엘튼 존이 히트곡이 많은 아티스트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 곡 한 곡 정성을 다해 힘있는 가창과 아름다운 연주로 완수해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초기 시절에 비해 목소리의 저음이 두드러졌지만 이 보이스 톤은 쇠약해지기는커녕 점차 깊이와 활력을 더해갔다. 이처럼 선택된 관객들은 '엘튼 존'이라는 열정적인 인간을 제한된 공간 안에서 있는 그대로 체험했다. 그리고는 엘튼 존의 전성기를 다름 아닌 바로 지금이라 단언하게 됐다.



 

Writer. 한상철
음악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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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대로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펼쳐지는 이번 엘튼 존의 내한공연은, 소공연장이 지니고 있는 공간의 특성상 단 500명만 관람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500명은, 몇만 명 단위를 수용하는 경기장에서나 관람할 수 있었던 엘튼 존의 라이브를 불과 단 몇 발자국 앞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도 소규모의 공연은 엘튼 존에게 있어서도 몇몇 즉석 퍼포먼스를 제외하면 거의 데뷔 초에나 있을 법할 정도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이번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의 내한공연은 규모, 그리고 중요도에 있어서 과거 엘튼 존의 미국 데뷔 무대가 펼쳐진 트루바두르 클럽에서의 공연과 비교해볼 수 있겠다.



미국 싱어송라이터들의 산실: 트루바두르(Troubadour)

 


출처: troubadour.com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끝난 직후, 70년대로 들어서자마자 비틀즈 같은 대형 밴드가 해체하는 등 60년대 록 스타들은 점차 그 자취를 감췄다. 대신 싱어송라이터 무브먼트가 세력을 확장해나갔다. 이런 시대 분위기 한 가운데에 덕 웨스턴이 개장한 캘리포니아 산타 모니카에 위치한 클럽 트루바두르는 1968년부터 70년대 후반까지 싱어송라이터 씬을 이끄는 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낸 공연장이었다. 주로 포크 뮤지션들이 공연했는데 조니 미첼, 잭슨 브라운, 무엇보다 캐롤 킹과 제임스 테일러 같은 거장들이 이곳에서 활동을 시작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2007년 무렵에는 캐롤 킹과 제임스 타일러가 트루바두르 클럽 5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그 무렵 클럽에 관한 다큐멘터리 또한 제작됐다. 


누군가는 60년대에 체력을 소진한 로큰롤 세대들이 투르바두르의 클럽에서 위안을 얻었다 말하기도 했다. 이는 싱어송라이터들에게 있어 일종의 안식처와도 같은 공간이었다. 70년대에는 물론, 지금에 와서도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젊고 새로운 싱어송라이터들은 여전히 트루바두르 클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중이다.



전미를 놀라게 한 엘튼 존의 트루바두르에서의 첫 미국 데뷔 퍼포먼스



출처: eltonjohn.com



막 두 번째 셀프 타이틀 정규 작을 내놓은 엘튼 존은, 영국에서 화제의 중심에 서있던 와중 본격적으로 미국 진출을 계획한다. 그리고 엘튼 존의 첫 미국 데뷔 쇼가 펼쳐질 장소로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클럽 트루바두르가 결정됐다. 다큐멘터리 [트루바두르] 속 엘튼 존의 인터뷰에 의하면 그는 미국을 방문하기 이전 항상 캘리포니아의 비버리 힐스 같은 곳을 상상해왔다고 한다. 


1970년 8월 25일 화요일, 엘튼 존이 처음 트루바두르에서 공연할 무렵, 미국인들은 그가 누군지를 전혀 몰랐다. LA 타임즈의 평론가 로버트 힐번은 이를 두고 '이름 모를 선수가 LA 다저스 스타디움에 오른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엘튼 존의 아이돌이었던 로라 나이로가 2주 전 트루바두르에서 연주한 바로 그 피아노 앞에 앉아 엘튼 존이 연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순식간에 음악에 빠져들었다. 


엘튼 존은 트루바두르에서 5일간 공연했다. 퀸시 존스, 레온 러셀 등의 유명인사들이 당시 그의 공연을 지켜봤다. 닐 다이아몬드의 경우 공연 시작 전에 무대 위에서 엘튼 존을 소개하기도 했다. 코미디언이자 배우인 스티브 마틴 역시 그날 공연장에 있었고 정말로 좋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캐롤 킹 또한 엘튼 존의 곡, 그리고 퍼포먼스에 마음을 빼앗겼다 말했고, 당시 트루바두르의 조명과 음향 담당기사였던 리차드 데이브스도 그 공연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트루바두르에서 활동하던 베이시스트 리랜드 스클라는 엘튼 존이 트루바두르에서 공연하던 바로 그때, 음악 씬이 변화하는 순간이었다고까지 언급하기도 했다. 탁월한 연주, 그리고 명쾌하면서도 아름다운 노래가 있었다.


이 성공적인 첫 미국 데뷔 공연 이후, 본격적으로 미국의 라디오에서도 엘튼 존의 곡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엘튼 존 자신에게도 트루바두르 공연은 커리어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계기가 됐지만 소규모 공간이었던 트루바두르 클럽 역시 그의 덕을 보면서 관심을 받았다. 때문에 한때 클럽 외부 벽면에는 엘튼 존의 사진이 크게 진열되어 있기도 했다. 이후 롤링 스톤 매거진은 '로큰롤 역사 중 가장 중요한 콘서트 20' 리스트에 엘튼 존의 이 트루바두르 데뷔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참고로 그는 트루바두르에서의 공연을 마친 후 영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런던의 공연장 로얄 알버트 홀에서 연주했다. 그러니까 당시 영국에서 5,000석 규모의 공연장에서 볼 수 있었던 엘튼 존을 미국인들은 단 400명 정도를 수용하는 공간에서 관람한 셈이다. 엘튼 존은 해를 거듭해가며 성공했고 슈퍼스타가 된 이후에도 꾸준히 트루바두르를 찾았다고 한다.



트루바두르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기회

 


출처: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



트루바두르 클럽에서 엘튼 존의 미국 데뷔 공연이 열린 지 45년이 지난 현재, 엘튼 존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대형 스타가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번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의 내한 공연을 통해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됐다. 400석 규모의 트루바두르 보다 100석 정도가 많은 500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는 엘튼 존에게 있어서도 근 얼마 동안은 유례가 없는 규모의 공연장이다. 엘튼 존이라는 거대한 네임 밸류로 미루어 봤을 때 그의 소규모 공연이란 실현 불가능한 꿈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우리는 트루바두르에 우뚝 선 23세의 엘튼 존을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 시대의 문화적 토대를 마련해낸 싱어송라이터 엘튼 존 특유의 따뜻한 소리, 그리고 독특한 분위기는 큰 규모의 대형 공연장보다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공간에서 더욱 최적화를 이뤄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번 내한에서는 다양한 시기의 히트 곡들이 연주될 예정이지만 무엇보다 초기 그의 곡이 연주될 무렵에는 정말로 트루바두르 당시의 분위기를 상기시켜낼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이번 투어 멤버 중 드러머 나이젤 올슨의 경우 엘튼 존과 함께 트루바두르 데뷔 공연 현장에서 연주했던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여전히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는 엘튼 존은 해를 거듭할수록 인간으로서의 깊이를 더해나가고 있다. 이는 점차 완숙해져 가고 있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다. 좋은 노래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온전히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새삼 우리는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의 공연을 통해 생생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노래가 지닌 본연의 분위기 그 이상을 이 특별한 공간에서 감지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한공연 춘추전국시대인 현재, 이번 공연은 올해 가장 중요한 이벤트 중 하나로서 꾸준히 언급될 것이다. 과거 롤링 스톤 매거진이 로큰롤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공연으로 손꼽았던 엘튼 존의 소규모 트루바두르 라이브를 비로소 우리는 최대 근사치 값으로 체험해볼 수 있게 됐다. 정말로 값진 경험이 될 것이다.




 

Writer. 한상철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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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의 존 레논은 엘튼 존의 첫 히트 곡 <Your Song>을 들은 직후 '비틀즈 이후 처음으로 나타난 새로운 것'이라며 극찬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존 레논의 시각에서 '새로운 것'이었던 엘튼 존의 노래들은 세월이 흐른 현재,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고전이 됐다. 이처럼 영국을 넘어 한 시대를 대표하는 멜로디 메이커로서 자리매김한 엘튼 존을 전세계 그 누구보다도 가까운 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2004년 3만여 관중들과 섞여 잠실 주경기장에서 엘튼 존의 첫 내한공연을 봤던 이들이라면 단 500명만이 수용 가능한 공간에서 그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영원할 것만 같은 그의 주옥 같은 레퍼토리들은 이번 소규모 내한공연을 통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비틀즈 이후 처음으로 나타난 새로운 음악 <Your Song>



출처: onedio.com


감동적이고 로맨틱한 엘튼 존의 첫 히트 곡 <Your Song>은 발매 당시 빌보드 탑10 안에 들며 큰 인기를 끌었다. 자신의 모자란 처지에 움츠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멜로 드라마 같은 내용의 이 곡은 세월이 흘러 [브레이킹 더 웨이브], [물랑 루즈] 같은 영화에 삽입되며 젊은 층에게도 어필해냈다. 다양한 음악을 만들고 노래해 온 엘튼 존이었지만 <Your Song>으로 인해 서정적인 곡을 부르는 이미지로 굳혀져 갔다. 하지만 엘튼 존 본인은 이에 개의치 않았는데, <Your Song>은 질리지 않기 때문에 라이브에서 거른 적이 없는 유일한 곡이라 설명하기도 했다. 


<Your Song>의 가사는 엘튼 존과 오랜 시간을 함께해오고 있는 작사가 버니 토핀에 의해 작성됐는데, 참고로 버니 토핀이 가사를 넘긴 후 엘튼 존이 30분 만에 곡을 완성해냈다는 사실 또한 유명하다. <Your Song>은 싱글 [Take Me to the Pilot]의 B사이드 트랙으로 애초에 앨범에서 밀었던 곡도 아니었다. 이렇게 홀대 받던 곡은 이후 2004년 롤링 스톤이 꼽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 500' 중 136위를 차지해낸다.


<Your Song>은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재탄생되기도 했다. 로드 스튜어트, 레이디 가가 등이 불렀고 무엇보다 엘리 굴딩이 커버한 버전이 UK 싱글 차트 2위에 랭크 됐다. 엘리 굴딩은 이후 버킹엄 궁에서 열린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 그리고 노벨상 시상식에서도 <Your Song>을 부르게 된다. 이 가난한 사랑 노래가 가장 큰 규모의 행사에서 불리고 있는 것은 무척 아이러니한 일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불렀던 간에 이 진솔한 사랑의 노래 속에는 여전히 젊고 순수한 엘튼 존이 존재했다.



엘튼 존의 이미지를 각인시킨 고독한 남자의 노래 <Rocket Man>



출처: hyunjiwoon.tistory.com


엘튼 존이 <Your Song>을 히트시키며 자신의 등장을 알렸다면, 우주비행사의 고독을 노래하는 <Rocket Man>는 이미지적인 측면에서 엘튼 존을 대표하는 노래로 볼 수 있다. 1974년 엘튼 존이 직접 설립한 자신의 음반사 이름 역시 '로켓(Rocket)'이었고, 현재 제작 중인 엘튼 존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영화의 제목 역시 [Rocket Man]이기도 하다. 참고로 [매드 맥스]로 유명한 배우 톰 하디가 엘튼 존 역할을 담당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는 다양한 곳에서 <Rocket Man>의 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일단 불같은 강속구로 유명한 메이저리그의 대투수 로저 클레멘스의 별명 역시 '로켓맨'이었다. 또한 90년대 걸작 액션 영화 [더 록]에서도 재미있는 대사가 등장한다. 영화 속에서 FBI 폭탄 전문가이자 비틀즈 애호가로 등장하는 니콜라스 케이지가 악당과 대결할 무렵 엘튼 존의 <Rocket Man>을 좋아하냐고 묻고, 그 노래를 비웃는 악당에게 결국 로켓을 발사해 제거하는 장면은 꽤나 흥미롭다.


<Rocket Man>은 부유감 있는 멜로디를 바탕으로 묵묵히 고독을 견뎌내는 엘튼 존의 목소리가 흘러간다. 이는 모두가 아는 단순한 SF 스타일의 가사가 아닌, 고립된 엘튼 존 자신을 위한 노래라는 생각도 든다. 그의 다른 히트 곡들이 그렇듯 지금에 와서 들어도 전혀 낡았다는 느낌이 없는, '영원한 팝'이라는 타이틀에 부끄럽지 않은 명곡이다.



[오즈의 마법사] 속 노란 벽돌 길에서 따온 <Goodbye Yellow Brick Road>



출처: ⓒ UNIVERSAL MUSIC


<Goodbye Yellow Brick Road>은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에메랄드 시티로 통하는 길을 모티브로 한 노래이다. 인상적인 피아노 전주,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부드러운 보컬은 치유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비틀즈 해체 이후 음악적으로 큰 스타를 잃었던 영국은 엘튼 존의 선전을 통해 새로운 팝 스타의 탄생을 직감하게 된다. 엘튼 존이 야심 차게 발표한 더블 LP [Goodbye Yellow Brick Road]의 타이틀 곡으로 앨범에는 쟁쟁한 히트 곡들로 채워져 있지만 특히 이 타이틀 곡은 그야말로 엘튼 존을 대표하는 노래가 되어버렸다. 


알려진 대로 '노란 벽돌 길'은 LGBT의 아이콘이기도 한 명작 뮤지컬 영화 [오즈의 마법사] 중 주인공 도로시가 희망을 이루기 위한 목적지인 에메랄드 시티로 통하는 길에서 따온 것이다. 엘튼 존의 곡은 시골에서 도시로 상경한 젊은이가 자신의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다시금 시골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는 여러 가지로 해석 가능하다. '노란 벽돌 길'은 황금으로 포장된 연예계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 가사에도 몇몇 추악한 쇼 비즈니스에 관한 풍자들이 얼추 담겨있기도 하다. '노란 벽돌 길'은 그에게 있어 새로운 출발점이자 다시 되돌아가야만 하는 종착지이기도 하다.



두 여인을 추모하는 엘튼 존의 가슴 아픈 헌사 <Candle In The Wind>



출처: telegraph


1997년 전 영국을 비탄에 빠뜨린 사건이 발생했으니, 바로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의 장례식에서 엘튼 존은 1973년 공개된 <Candle In The Wind>를 부른다. 1973년 당시에는 역시 갑자기 사망한 마릴린 먼로에게 바치는 추모곡이었지만 1997년도에 공개된 곡의 경우 약간의 개사작업을 거쳐 <Candle In The Wind 1997>이라는 타이틀로 새롭게 발표했다. 오리지널 곡이 '풍전등화'의 위태로운 상황을 그렸다면 97년도 버전은 비바람에도 여전히 빛을 잃지 않는 고결한 촛불의 의미를 담아내려는 듯한 개사가 엿보였다. 애도의 감정을 담은 차분한 피아노 연주와 호소력 짙은 목소리는 당시 슬픔에 빠진 전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역할을 했다.


장례식 이후 공개된 싱글 앨범은 그야말로 전세계를 뒤집어 놓았다. 영국에서는 첫날 65만 8천 장, 발매 1주 만에 150만 장을, 그리고 6주 만에 540만 장이라는 경이로운 판매수치를 기록했다. 미국에서는 예약 매수가 870만 장이었고 첫 출하 때는 800만 장이 풀렸다. 당시 CD의 생산능력이 발주 수를 따라잡지 못할 정도의 히트를 기록했기 때문에 발매 음반사가 한때 주문 접수를 중단해야만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는 무려 14주 동안 1위 자리를 고수해냈다. 결국 이는 영국, 그리고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싱글로서 우뚝 서게 된다. 이 노래를 통해 엘튼 존은 그래미에서도 최우수 남성 팝 보컬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한다. 정확한 매수가 집계되지 않고 있는 빙 크로스비의 고전 'White Christmas'를 제외하면 이는 단일 싱글 매출로는 세계 최고의 기록으로 남겨져 있는 상태다. 이런 어마어마한 기록들과는 별개로 무엇보다 곡은 마릴린 먼로와 다이애나 모두에게 어울리는 아름다운 가사, 그리고 멜로디를 담아내고 있었다. 



엘튼 존에게 첫 번째 아카데미 상을 안겨준 [라이온 킹]의 주제곡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출처: doublebreviews.tumblr.com


엘튼 존은 영화와 뮤지컬 분야에서도 큰 족적을 남긴 아티스트로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영화 [라이온 킹]의 주제곡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은 엘튼 존에게 처음으로 아카데미 상을 안겨준 노래였다. 아프리카 특유의 웅장함, 그리고 위대한 사랑을 경건하게 노래하는 엘튼 존의 발성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1971년 영화 [Friends]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하면서 그래미 후보에 올랐던 엘튼 존은 약물과 알코올 중독에서 막 벗어난 1990년대 초반 무렵 다시금 영화음악에 도전한다. 결국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을 통해 그는 그래미는 물론 아카데미 상 마저 수상하기에 이른다. 엘튼 존의 영원한 작사 파트너 버니 토핀 대신 [에비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등을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작업해온 작사가 ‘팀 라이스’와 함께 곡을 완성했다.


엘튼 존이 직접 부른 버전과는 별도로 원래 만화 속에서는 티몬과 품바 듀오가 부를 예정이었다. 하지만 엘튼 존이 이 곡이 코믹하게 다뤄지는 것을 꺼렸던 지라 결국 제 3자가 부르는 것으로 처리되고 마지막 부분만 티몬과 품바가 마무리 짓는 형태로 곡을 끝맺었다. 엘튼 존 역시 이 노래에 대해 '디즈니의 전통을 기반으로 한 아름다운 러브 송'이라 설명하면서 자부심을 표했다. 



흑인 아티스트들에게 유독 사랑 받아온 <Benny & The Jets>



출처: ultimateclassicrock.com


단조롭지만 절도 있는 리듬으로 듣는 이들의 몸을 움직여내는 <Benny & The Jets>는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자리는 물론, 흑인 아티스트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엘튼 존의 곡으로는 최초로 빌보드 소울 차트에 등극했던 곡이다. 이는 가상의 밴드 '베니 앤 더 젯츠'를 따라다니는 팬의 입장에서 전개되는 곡으로 작사가 버니 토핀은 1970년대 음악산업을 풍자한 내용의 노래라 말했다. 'Walls of Sound' 같은 가사는 확실히 필 스펙터를 떠올릴 만도 하다. 영화 [마이걸 2]에서는 주인공 꼬마들이 어른들이 자리를 비웠을 때 밤거리를 배회하는 장면에 흐르기도 했다.


엘튼 존의 곡으로는 이례적으로 유독 흑인 뮤지션들에게 사랑 받고 또한 불려졌다. 매리 제이 블라이지의 경우 자신의 곡 'Deep Inside'에 이 곡의 피아노 파트를 샘플링하려 했는데 결국 엘튼 존이 직접 참여해 피아노를 연주해줬고, 아샨티의 'Good Good'에도 곡이 샘플링됐다. R&B 스타 미겔과 [더 보이스]의 출연자 T.J. 윌킨스 역시 각각 이 곡을 커버했다. 무엇보다 래퍼인 비즈 마키 또한 종종 이 곡을 라이브에서 불렀는데 비즈 마키의 라이브 버전은 여러분들이 꼭 들어봤으면 좋겠다.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한편 한 백인 뮤지션에게는 가수의 길을 선택하도록 영감을 준 곡이었다. 건즈 앤 로지스의 보컬 액슬 로즈는 이 노래를 듣고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으며, 이후 가수로서 엘튼 존과 함께 ‘the Freddie Mercury Tribute Concert’ 무대에 서기도 했다.




 

Writer. 한상철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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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10maemi 2015.10.30 15:32 신고

    시간 없으신 분은, Goodbye Yellow Brick Road 한 곡만이라도 꼭 들어보세요!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아름다움의 한계'
    한 네티즌 분의 이 평이 참 와닿는, 그런 노래입니다.

  2. addr | edit/del | reply 10maemi 2015.10.30 15:40 신고

    평론가다운 적절한 대표곡 선곡이네요.
    엘튼 존이 발라드음악을 주로 했던 아티스트가 아닌데,
    국내에선 이상하게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가 대표곡인양 알려져 있죠.
    인기곡이라고 하면 모르지만, '대표곡' 이라고 하면 정말 동의하기가 힘듭니다.
    미국 6위, 영국 10위에 그친 노래기 때문에, 차트 성적으로 봐도 대표곡 위상에 맞지 않아요.
    이걸 대표곡이냐고 엘튼 존 본인에게 직접 물어봐도 어리둥절 할 거라고 보고요.

    굳이 발라드계열로 대표곡을 꼽겠다면,
    본문에도 있는 Goodbye Yellow Brick Road를 꼽는 것이
    상징성으로도, 차트 성적으로도 훨씬 당위성이 있는 일이죠.
    공감 하트를 하나밖에 주지 못하는 게 아쉽네요!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본능적으로 먼저 캐치하는 것은 아무래도 멜로디다. 이는 차트 성적에서도 증명된다. 차트 상위권을 차지한 곡들을 쭉 감상해보면, 거의 대부분이 선율이 돋보이는 곡들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등식을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빼어난 멜로디=히트보증수표”라고 말이다. 



히트곡 제조기로서의 품격


엘튼 존(Elton John)은 위 등식이 ‘참’임을 지난 수십 년간의 활동을 통해 증명해온 위대한 싱어송라이터다. 일단 해외, 그 중에서도 빌보드에서 차트 히트곡의 기준은 TOP 40이다. 40위권에 들었느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히트를 분류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엘튼 존은 지금까지 과연 몇 개의 TOP 40 히트곡을 보유하고 있을까. 정답은, 놀라지 마시라. 총 58개다. 1971년 <Your Song>을 8위에 올려놓은 이후로 그는 가히 범접 불가능한, 히트곡 제조기로서의 품격을 보여줬다. 





어디 이뿐인가. 그는 이 TOP 40 히트곡을 25년간 한해도 거르지 않고 보유했던 바 있다. 25년간 매년 히트곡을 쏘아 올렸다는 얘기다. 그런데 TOP 40가 이 정도니, TOP 10은 오죽할까. 10위 안에 진입한 싱글만 총 27곡이고, 그 중에서 1위는 9개나 된다. 


전 세계 2억 5천 만장이라는 경이로운 음반판매고를 기록한 그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 싱어송라이터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며 ‘20세기가 낳은 팝의 거장’으로 칭송받고 있다. 그러니까, 엘튼 존은 경이로운 멜로디스트다. 그런데 일단 그의 천부적인 선율감을 언급하기 전에 살펴봐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그의 평생 파트너였던 작사가 버니 토핀(Bernie Taupin)과의 파트너십이다. 음악 전문지 [롤링 스톤]과 했던 인터뷰에서 엘튼 존은 버니 토핀과 함께 했던 작업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던 바 있다.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모든 표현들, 즉 사랑, 고통, 분노 등을 난 멜로디를 통해 표출하죠. 그래서 나를 위해 가사를 써줄 누군가가 필요했어요. 버니 토핀이 없었다면, 여행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과연, 둘이 함께 빚어낸 곡들은 마치 마법 같은 매혹으로 대중들에게 어필했다. 뭐랄까. 아름다운 선율과 시적인 노랫말이 정점에서 만난 듯한 곡들이 퍼레이드처럼 계속된 것이었다.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이 일궈낸 앙상블은 가히 당대에 적수가 없었다. 아니, 비단 당대뿐만이 아니었다. 발표하는 싱글마다 인기를 모았고, 결국에는 명곡의 반열에 올라 지금 세대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과정이 이를 증명한다.



엘튼 존의 마법 같은 명곡


엘튼 존의 가장 핵심적인 곡들 중, 먼저 언급해야 할 곡은 당연히 <Your Song>이다. 이 곡은 엘튼 존 전설의 출발이었다. 처음으로 자신이 대중의 주목을 받아 이후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해줬다는 역사적인 의의 때문일까. 그의 공연 레퍼토리에 절대 빠지지 않는 곡이기도 하다. 


<Goodbye Yellow Brick Road>도 빼놓을 수 없다. 엘튼 존 최고의 걸작으로 거론되는 [Goodbye Yellow Brick Road](1973)의 타이틀로 발표되자마자 평단으로부터 “섬세하면서도 황홀하다”라는 격찬을 받았던 곡이다. 같은 앨범에 실린 <Bennie and the Jets>는 또 어떤가. 이 곡에서 우리는 팝과 록을 이상적으로 공존시킬 줄 아는 엘튼 존의 놀라운 재능을 만날 수 있다. 터치는 분명히 록적인데, 전체적인 질감은 팝적인 곡이라고 해야 할까. 이 외에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의 지위를 놓치지 않고 있는 곡이자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추모하기 위해 과거의 원곡을 다시 녹음해 공개한 <Candle in the Wind 1997>의 존재감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이라는 지리적 맥락을 고려해보면, 위에 써놓은 곡들이 인기 넘버원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엘튼 존의 곡은 역시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다. 무엇보다 각종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 같은 컴필레이션에도 절대 빠지지 않는 단골 레퍼토리라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심지어 이 곡은 오리지널뿐만 아닌 영국의 보이 밴드 블루(Blue)와 함께 한 커버 버전을 통해서도 높은 인기를 누렸다. 비교해서 들어보면, 후자가 조금 더 리듬이 빠르고, 그래서 전형적인 백인표 발라드인 원곡보다 알앤비적임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언급하고 싶은 엘튼 존의 명곡들은 부지기수다. 영화 [올모스트 페이머스]에서 흘렀던 <Tiny Dancer>, 여가수 키키 디(Kiki Dee)와 함께 부른 <Don’t Go Breaking My Heart>, 그리고 무엇보다 애니메이션 [라이언 킹]의 수록곡이었던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과 <Circle of Life> 등이 전해줬던 감동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하긴, 10위 안에 입성한 곡만 27개니, 이걸 다 글에 담으려는 건 과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느끼는 천재의 멜로디


1969년 [Empty Sky]로 데뷔한 이래, 80여 개국에서의 3,500회 이상의 공연 기록을 보유한 엘튼 존은 워낙에 대형 아티스트인지라 데뷔 초를 제외하고는 작은 규모의 콘서트를 한 적이 그리 많지 않다. 물론 잠실 주경기장에서 있었던 지난 2004년의 내한 공연을 복기해보면, 커다란 스케일로 진행된다고 해서 그 감동의 여파가 작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실제로 배철수의 음악캠프에도 2012년에 열렸던 체조경기장에서의 공연 이후 “정말 좋았다.”는 청취자들의 후기가 많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번 공연은 소극장에서의 라이브라는 점에 특별히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주지하다시피, 소극장 공연은 많은 관객이 참여하지 못한다는 단점 대신 아티스트와의 친밀도를 지근거리에서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즉, 엘튼 존의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오는 환상적인 멜로디를 바로 앞에서 감상할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TOP 10위곡만 쭉 불러도 총 27곡인데, 이 중에서 그가 과연 어떤 곡을 선택해 들려줄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소극장 공연이니만큼 관객과의 친밀도 및 호흡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세트리스트가 되지 않을까 싶다. 

 

영국에는 이른바 천재적인 멜로디 메이커의 계보가 존재한다. 올해 첫 내한 공연으로 엄청난 화제를 모았던 폴 매카트니가 알파라면, 엘튼 존은 단언컨대 오메가와도 같은 존재다.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펼쳐질, 단 500명만을 위한 특별한 소극장 공연이 이를 다시금 증명해줄 것이다. 



 

Writer.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청춘을 달리다’ 저자, SNS 냉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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